전편보다 뛰어난 오락성과 완성도
2014년 개봉하여 1,760만 명이라는 믿기지 않는 흥행 기록으로 역대 한국 영화 중 최고의 관객을 동원한 '명량', 그 두 번째 이야기가 바로 한산: 용의 출현입니다. '명량'을 보며 차오르는 감동과 전율을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영화입니다. 감독은 '최종병기 활'과 전편인 '명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다시 연출을 맡게 되었습니다. '명량'의 후속작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그보다 5년 전의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입니다. 흥행성적으로만 보면 전작인 '명량'에 한참 못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천만 관객 동원에도 실패했습니다. 현재 추산 약 72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출연배우들은 '명량'과 달리 대부분 다른 배우들로 교체되었습니다. 주연을 포함한 배우들이 대거 변경된 이유는 명량해전 보다 더 이전 시간대인 한산도대첩을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량'의 주연배우 최민식이 출연을 고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민식 배우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액션 연기의 어려움도 있지만 이순신 연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후속작이 나오더라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이미 언급을 했기 때문에 배우 교체는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연배우의 교체에 따른 다른 주요 배우들도 새로운 배우들로 교체되었습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뛰어난 전술로 이루어낸 최고의 해전
159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보름 만에 왜군에게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파죽지세로 조선땅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력을 부산포로 집결시킵니다. 한편, 이순신 장군은 연이은 전투의 패배와 조선 임금인 선조마저 의주로 파천하며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술을 고민하며 출전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앞선 전투에서 손상을 입은 거북선의 출정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거북선의 도면마저 왜군의 첩보에 의해 도난당하게 됩니다. 왜군은 연승을 거듭하며 그 기세를 몰아 한산도 앞바다로 향하게 됩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명운을 건 전투를 위해 필사의 전략을 준비합니다. 1592년 여름, 음력 7월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 조선의 운명을 가를 지상 최고의 해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견내량 대첩으로도 알려진 한산대첩은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의 전황이 바뀌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투 중의 하나로 이 한산해전에서 승리하면서 평양까지 승승장구한 고니시 유니나가의 군이 추가 보급 및 병력 지원을 받지 못하여 평양성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수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전라도를 공격하는 왜군의 움직임도 둔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산대첩은 또한 다른 해전에 비해 군사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은 전투입니다. 학익진을 이용한 해상에서의 포위 섬멸전을 이 정도로 정교하게 선보인 전투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웅장한 스케일
한산: 용의 출현은 전작인 '명량'에 비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명량'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과도한 신파와 쓸데없이 낭비하는 등장인물이었는데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또한 해전 장면도 '명량'에 비해 많이 나아진 모습입니다. 영화 개봉이후 관계자들은 흥행과 평가가 반비례한 '명량'의 단점들이 대부분 개선되었으며 많은 면에서 퀄리티가 좋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단점으로 지적받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닌데,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신파적 묘사와 영화가 너무 담백해지다 보니 주인공 이순신의 영향력이나 고뇌, 지략, 결단 등이 대사로 표현되는 것이 매우 드물고 주연배우 박해일의 표정연기에만 의존한 채로 표현됩니다. 한산: 용의 출현은 전체적으로 '명량'에서 보여주었던 상투적이고 뻔한 국뽕끼는 많이 줄고 담백해졌으며 해상전투 장면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웅장한 스케일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